왜 하필 그 순간, 몸이 그것을 선택했을까요
첫 번째 공황이 언제 왔는지 물으면, 대부분 이렇게 답합니다.
집에 가던 길. 마트 안. 화요일 밤, 침대에 누워 있을 때.
장례식장에서도, 이별 직후에도, 마감 당일에도 아니었습니다.
그 타이밍이 사람들을 혼란에 빠뜨립니다. "아무 일도 없었는데요. 그게 오히려 더 무섭더라고요."
그런데 이건 무작위가 아닙니다. 왜 그런지 알면, 그 두려움에서 조금씩 힘이 빠집니다.
오랫동안 긴장 상태가 계속될 때, 몸은 계속 버팁니다.
코르티솔이 높아지고, 잠은 얕아지고, 신경계는 낮은 수위로 늘 경계를 유지합니다.
그런데 정작 본인은 잘 느끼지 못합니다. 바쁘기도 하고, 그 긴장이 있어야 겨우 버텨지니까요.
그러다 압박이 조금 풀립니다.
마감이 끝납니다. 자리에 앉습니다. 한숨을 내쉽니다.
몇 달 동안 줄을 꽉 쥐고 있던 신경계가 그제야 힘을 조금 놓습니다.
그 순간, 몸 안에서 뭔가 달라지는 느낌이 옵니다.
그리고 몸의 경보 회로는 바로 그것, '무언가 변하는 느낌'을 포착합니다.
첫 공황이 '안전한 곳'에서 일어나는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안전한 곳이야말로, 긴장을 놓을 수 있는 곳이니까요.
대부분의 경우, 여기에 하나가 더 더해집니다.
먼저 찾아온 신체 감각입니다.
카페인을 너무 많이 마셨거나. 빠르게 자리에서 일어났거나. 방이 너무 덥거나. 사흘 동안 잠을 제대로 못 잤거나.
지극히 평범한 이유로 심장이 조금 빨리 뜁니다.
몸이 그 감각을 알아채고, 마음이 묻습니다. 이게 뭐지?
그 질문이 감각을 키우고, 커진 감각이 질문을 더 급하게 만듭니다.
공황은 삶이 무너지고 있다는 신호가 아니었습니다.
지쳐 있던 신경계, 평범한 신체 감각, 그리고 "나 지금 왜 이러지?"라는 질문이 한꺼번에 부딪힌 것입니다.
이걸 안다고 해서 다음번이 오지 않는 건 아닙니다.
그런데 많은 분들이 조용히 안고 있는 한 가지 두려움은 걷힙니다.
'아무 이유 없이 왔다'는 두려움.
그 두려움이 무서운 건, '그럼 또 아무 데서나 올 수 있다'는 생각으로 이어지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공황은 아무 데서나 온 게 아닙니다.
아주 구체적인 곳에서 왔습니다.
그때 우리가 그쪽을 보고 있지 않았을 뿐입니다.
그건 삶이 흔들린다는 경고가 아니었습니다. 평범한 것들이 한순간에 부딪힌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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