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기불안, 오지도 않은 것이 무서운 상태
발작이 없는 날에도 마음이 편하지 않다는 분들이 많습니다.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오늘 일정부터 떠올립니다. 회의는 몇 시인지, 지하철은 몇 정거장을 가야 하는지, 혹시 그때 오면 어디로 나가야 하는지.
그날은 실제로 아무 일도 없었습니다. 그런데 하루 종일 마음 한쪽이 쓰였습니다. 집에 돌아오면 한 것도 없는데 녹초가 되어 있습니다.
이게 바로 예기불안입니다. 오지도 않은 것이 무서운 상태입니다.
사실은 이쪽이 더 큰 부분입니다
많게는 10년 넘게 공황을 겪어 오신 분들이 상담을 요청하십니다. 그분들께 "요즘 어떠세요?" 하고 여쭤보면, 대부분 발작 횟수로 답하십니다.
"이번 달엔 두 번밖에 안 왔어요."
그런데 조금 더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그 두 번보다 나머지 날들이 훨씬 힘드셨다는 걸 알게 됩니다.
발작은 몇 분입니다. 예기불안은 하루 종일입니다.
삶을 실제로 좁히는 건 발작이 아니라, 발작을 기다리는 시간입니다.
발작 횟수로만 나아진 정도를 재면, 매일 무거운 짐을 지고 다니면서도 "나는 괜찮은 편"이라고 넘기게 됩니다.
왜 생길까요?
몸은 위험을 미리 준비하도록 만들어져 있습니다.
뜨거운 냄비에 한 번 크게 덴 사람은, 그 뒤로 냄비 손잡이를 잡을 때마다 손이 먼저 움찔합니다. 손이 고장 난 게 아닙니다. 다시 다치지 않으려고 성실하게 대비하는 겁니다.
공황도 똑같습니다. 뇌가 한 번 크게 겁을 먹으면, 몸은 그 뒤로 미리 대비하기 시작합니다.
그래서 예기불안은 고장이 아니라 과한 성실함입니다. "또 그러면 안 되니까 미리 준비해 둬야 한다"는 마음입니다.
"그래도 대비를 해야 안전하지 않나요?"
이렇게 물으시는 분들이 정말 많습니다. 대비를 안 하면 진짜로 큰일이 날 것 같다는 거죠.
하지만 반대입니다.
문 쪽 자리를 고를 때마다, 약속을 짧게 잡을 때마다, 몸은 이렇게 배웁니다. "역시 이건 대비해야 할 만큼 위험한 일이다."
대비가 늘어날수록 불안은 줄어들지 않습니다. 오히려 "나는 늘 대비해야 하는 사람"이라는 감각이 커집니다.
노력의 양이 부족한 게 아닙니다. 노력의 방향이 반대로 가 있는 겁니다.
나아짐을 재는 기준부터 바꿔 보세요
"오늘 발작이 몇 번 왔나"가 아니라, "오늘 불안 때문에 포기한 일이 몇 개였나"를 세어 보는 겁니다.
발작이 와도 하고 싶은 일을 했다면, 그날은 좋은 날입니다. 발작이 한 번도 없었어도 하루 종일 피해 다녔다면, 그날은 예기불안이 이긴 날입니다.
기준이 바뀌면, 노력의 방향도 함께 바뀝니다.
지금 할 수 있는 세 걸음
- 오늘 "혹시 모르니까" 하고 한 일을 하나만 찾아보세요. 자리를 문 쪽으로 잡았다든가, 약속 시간을 짧게 잡았다든가, 가방에 물을 꼭 챙겼다든가 하는 것들입니다.
- 그중 가장 사소한 것 하나만 안 해 보세요. 가장 어려운 것 말고, 가장 쉬운 것입니다. 작게 시작해야 반복할 수 있습니다.
- 불안이 올라오면 "몸이 또 성실하게 준비하고 있네요" 하고 알아차려 주세요. 없애려고 애쓰지 말고, 몸에 힘을 빼고, 원래 하던 일로 돌아가면 됩니다.
처음엔 당연히 어색하고 불편합니다. 처음이니까 그렇습니다. 그래도 괜찮습니다.
준비를 덜어낸 분들에게 생기는 변화
제가 만난 분들 중에는 외출할 때마다 가방에 챙기는 물건이 열 가지가 넘던 분들이 있었습니다.
한 주에 하나씩 덜어내다 보니, 어느 날은 가방 없이 동네 카페에 다녀오셨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아무 생각 없이 커피를 마셨어요. 그게 얼마 만인지 모르겠어요."
불안이 먼저 사라져서 가능했던 게 아닙니다. 준비를 하나 덜어낼 때마다, 몸이 "생각보다 괜찮네"를 하나씩 배운 겁니다.
마지막으로
예기불안은 나를 지키려고 너무 열심히 일하는 마음입니다. 미워할 필요는 없습니다. 이제는 그렇게까지 하지 않아도 된다고, 조금씩 알려 주면 됩니다.
공황을 피하는 삶에서, 나를 위한 삶으로.
그 방향 전환은 아주 사소한 준비 하나를 내려놓는 데서 시작됩니다.
이 글이 도움이 됐다면, 같은 마음으로 힘든 분께 보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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